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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이 가을, 큐레이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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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 대한민국 > 서울

발행 2018년 11월 호

화려한 영상이 활자를 대신하는 사이 종이책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동네의 작은 책방들. 책방 주인이 세심하게 고른 책들과 그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큐레이션 서점들을 찾았다. 허전하고 메마른 감정이 책 한 권으로 풍성하게 채워지는, 따스한 이 계절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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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유럽식 서점, 부쿠

성북동 서울성곽 아래 양철 지붕의 단골 쌈밥집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11월 그 자리를 비집고 프로방스의 햇살을 머금은 전원풍의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붉은 벽돌과 파스텔 톤 외벽이 아름다운 유럽 스타일의 큐레이션 서점, 부쿠다. 이곳은 150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한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이름의 북튜버이자 베스트셀러 <나에게 고맙다>의 저자 전승환 작가와 출판사 백도씨의 이규상 대표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부쿠(Buku)’는 인도네시아어로 ‘책’이라는 뜻. 언뜻 북(Book)처럼 들리기도 한다. 묵직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유럽의 고즈넉한 성을 연상케 하는 우드 톤의 인테리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황금빛 샹들리에와 널찍한 아치형 창문, 천장까지 닿아 있는 서가, 잘 가꿔진 야외 정원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보통의 서점은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인데, 이곳은 베이커리 카페와 결합해 편안하게 책을 보며 힐링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표방한 서점답게 소품 하나하나도 세심히 마련했다. 수첩이나 다이어리, 연필 등 수입 문구류도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영국의 돈트 북스나 프랑스의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처럼 부쿠만의 에코백을 자체 제작하는 것도 매력적. 에코백 전면에는 이국적인 부쿠 건물 스케치가 프린팅되어 있다. 시와 소설, 에세이, 인문, 경제, 사회, 잡지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을 갖춘 부쿠는 북큐레이터 4명이 감동받은 책을 선별해 큐레이션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서가의 테마를 바꾸는 것이 특징. ‘미니멀한 당신에게 어울리는 책’ ‘쌀쌀한 날씨, 쓸쓸한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책’ ‘성북동 문인들의 책’ 등 매달 주제를 바꿔 책을 선정하고 있다. 한글날엔 읽고 쓰고 말하는 것들에 대한 책을 모았고, 한글의 아름다움을 살린 타이포그래피 표지의 책을 선보이기도 했다. 박미애 북큐레이터는 “대형 서점은 책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정보가 넘쳐나 오히려 나에게 맞는 책을 찾기가 어려워요. 부쿠의 북큐레이터들은 책을 큐레이션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하죠. 주로 제가 읽은 책 위주로 추천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용히 책을 고르고 싶은 이들에게는 ‘부쿠픽(buku pick)’이 도움이 된다. 투명 필름에 적은 손글씨 책갈피인데, 거의 모든 책마다 꽂혀 있다. 북큐레이터들은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간단한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책을 구매하면 부쿠픽까지 덤으로 챙겨준다.
서점 한쪽에선 다양한 종류의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한다. 시즌마다 베이커리 메뉴가 바뀌는데, 영국식 전통 스콘부터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케이크 카눌레, 쫄깃한 식감의 하와이안 머핀, 오렌지 케이크 등 매일 7~8가지 디저트를 직접 만든다. 슬라이스한 무화과를 꽃잎처럼 올린 ‘무화과 케이크’는 내놓기 무섭게 팔린다. 책과 마카롱을 함께 구성한 ‘북카롱’ 메뉴도 올가을 새롭게 선보였다.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애플레몬 마카롱,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와 솔티 캐러멜 마카롱 등 9가지 북카롱이 쇼케이스에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부쿠에서는 한 달에 1~2번 북토크도 진행한다. 10월에는 팟캐스터로 유명한 <방구석 미술관>의 저자 조원재 작가를 초청했고, 11월에는 정세현 작가의 북토크가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서울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서울서점인대회’에 참가해 부쿠의 ‘블라인드북’을 소개할 예정이다. 포장지에 적힌 짤막한 발췌 문장만 보고 책을 고르는데 개봉 전까지 한껏 기대하게 만든다. 지난 10월 12일엔 매거진 전문 서점 ‘부쿠엠(부쿠 2호점)’이 대림미술관 뒤편에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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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마음을 치유하다, 당인리책발전소

MBC 전 아나운서 김소영 대표가 운영하는 책방. 1년 남짓 된 당인리책발전소는 김소영 아나운서가 책을 골라주고 오상진 아나운서가 커피를 내려준다고 알려지면서 합정・상수동 일대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안으로 들어서자 실물 크기의 오상진 아나운서의 전신 입간판과 초상화, 부부의 단란한 한때를 담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책방지기 김소영 씨는 “아나운서로 5년간 일한 회사를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 책과 관련된 일에 몰두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는 퇴사 후 훌쩍 도쿄 여행을 떠났고 다양한 서점을 찾았다. 그러던 중 책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고 책방을 열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그래서인지 당인리책발전소에는 책방 주인의 진실한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화려한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진정성이 묻어나는 공간,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오상진 아나운서와 연애 때부터 책을 매개로 소통한 그녀는 지금도 책방을 운영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단순히 부부를 보러 온 팬들도 카페 같은 서점 분위기에 매료되어 편안하게 머물다 간다고. 책방 한쪽에는 ‘#오상진의북스타그램’ 코너가 있다. 평소 인스타그램에서 소개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당선, 합격, 계급> 등을 만날 수 있다. 그 옆으로 부부의 에세이 <진작 할 걸 그랬어>와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김소영 대표는 마음이 공허한 가을, 외롭고 쓸쓸한 이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고전문학에 푹 빠져보라고 권한다. 책 위에 붙어 있는 그녀의 메모에도 오래도록 시선이 머문다. 쉽게 풀이한 서평을 읽은 기분이랄까. 요즘은 직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위로가 되는 책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중 <퇴사 준비생의 런던>은 단순한 ‘퇴사 장려’ 서적이 아니다. 런던 여행을 통해 창업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알토란 같은 콘텐츠가 담겨 있다. 당인리책발전소는 작가를 만나는 자리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지난 10월 6일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작가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사인회가 열리기도 했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은 현재 당인리책발전소의 베스트셀러다. 답답하고 열악한 요양소에 살던 노인들이 요양소보다 더 나은 환경인 감옥에 가기 위해 강도단을 꾸려 범죄를 저지르는 엉뚱한 범죄 소설이다. 훔친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세상을 바꾸는 데 일조하는 내용으로, 작가 특유의 풍자와 위트가 담겨 있다. 당인리책발전소는 오픈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송파구 위례에 2호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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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덕후를 위한 고양이 서점, 슈뢰딩거

요즘 대형 서점에서도 고양이 관련 코너를 따로 만들 만큼 애묘인이 크게 늘어났다. 혜화동 이화벽화마을 초입 언덕에는 고양이 집사들을 위한 고양이 전문 책방이 있다. 실제로 4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인 김미정 대표가 운영하는 ‘슈뢰딩거’에는 고양이와 관련된 다양한 국내외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 에세이와 애니메이션, 예술, 문학, 교양, 독립출판물 등 구비 도서만 500여 권에 달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수백 마리의 크고 작은 고양이들이 손님들을 일제히 노려본다. 나무 선반 위에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고양이의 속마음> <고양이의 크기> <고양이의 하루> 등 다양한 고양이가 그려진 책들이 불규칙하게 꽂혀 있다.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고양이 전문가로 거듭날 것만 같다. 티테이블 두어개 놓인 작은 공간이지만 고양이 관련 서적과 장식품, 굿즈를 전시하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버려지는 공간 없이 꽉꽉 채워 넣었다. 사서를 꿈꾸며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김미정 대표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고양이 캐릭터 배지와 스티커, 고양이가 그려진 행운의 2달러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탄생한 고양이 굿즈는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 홋카이도 출신의 사진가 사타 쓰요시(Tsuyoshi SATA)가 찍은 감각적인 고양이 사진엽서도 구입할 수 있다. 서점 한편에는 김미정 대표의 소장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선물받은 수입 사진집과 쉽게 구할 수 없는 고양이 그림책이 볼만하다. 슈뢰딩거에서는 고양이 마니아를 위한 소규모 모임도 운영한다. ‘냥이굿즈 만들기’ ‘고양이사진 잘 찍는 법’ ‘고양이드로잉’ ‘묘한쓰기 살롱’ ‘펫로스 치유 모임’ 등 진정한 냥덕후로 거듭나기 위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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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에디터 심민아
  • 사진 오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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