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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S BEST

GRAFFITI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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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벽, 그래피티

발행 2018년 03월 호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낙서가 아니다. 거리를 무대로 활동하는 바스키아, 키스 해링의 스트리트 아트가 갤러리에 걸리고 주류 미술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그래피티의 농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기존 대가들의 작품 못지않다. 재미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세계의 그래피티를 만나보자.
그래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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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운타운에 피어난 예술 , 아트 디스트릭트 Art District

1990년대까지만 해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은 주거지와 공업 지구가 주를 이뤘다. 지금의 세련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건 대대적인 재개발과 문화 사업이 시작된 2000년대 초반. 그 변화의 중심에 다운타운의 동쪽 끝 ‘아트 디스트릭트’가 있다. 로스앤젤레스 강과 리틀 도쿄 사이에 위치한 작은 지역인 ‘아트 디스트릭트’는 버려진 옛 창고 건물과 공장을 예술가들이 주거지로 사용하면서 조성된 것. 서울의 성수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1980년대경에는 폴 매카트니나 래드핫칠리페퍼스 등 유명 가수들이 공연을 펼칠 정도로 도시의 대표적인 예술 구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특히 유명하다. 거리 구석구석까지 수준급의 그래피티가 많은데, 그중 2016년에 그려진 한국 작가 ‘로열 독(Royal Dog, 심찬양)’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레게 머리를 한 흑인 소녀가 무표정하게 서있는데 그 자체로 스왜그 넘친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LA에 인종 화합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소녀 얼굴 옆으로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적힌 글귀도 인상적. 아래쪽엔 붉은색 낙관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동양의 멋을 풍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로열 독은 2016년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해 90일간 LA,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을 돌며 그래피티를 그렸다. 최근 아트 디스트릭트에 그래피티와 어울릴 만한 힙한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 인디 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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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야외 갤러리, 슈메이너스 Chemainus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섬 동남부에 있는 작은 바닷가 마을. 과거 유럽인을 피해 이주해 온 원주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실제 밴쿠버섬엔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e)이 많다. 19세기부터 목재 가공업으로 큰 번영을 누린 슈메이너스(Chemainus)는 캐나다와 미주 지역에 질 좋은 목재를 공급할 만큼 활기를 띠었다.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목재 공장이 지어졌을 정도. 하지만 점차 자원이 고갈되면서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 제재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경제 위기에 봉착했다. 마을 주민들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했고, 시 정부와 힘을 합쳐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 바로 벽화다. 1982년 건물 외벽에 그림 5점을 그린 것을 시작으로, 현재 40여 점의 벽화가 마을을 빛내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벽화는 원주민의 얼굴을 담은 작품 <네이티브 헤리티지(Native Heritage)>. 그 외 원주민 추장의 딸을 그린 벽화, 슈메이너스에 정착한 중국인을 담은 벽화 등 대부분 마을의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슈메이너스는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 벽화 추진위원회까지 만들었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해마다 벽화가 늘고 있어 ‘야외 갤러리’라는 별칭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슈메이너스 길 바닥에 노란색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셀프 벽화 투어가 가능하다. 곳곳에 작은 카페와 아기자기한 기념품점, 레스토랑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구입해 동선을 따라 벽화 투어를 하는 것도 추천한다. 지도에는 벽화를 그린 사람과 제작 연도, 작품 설명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슈메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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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밝힌 그래피티 물결, 호시어레인 Hosier Lane

한국인에게 일명 ‘미사 거리’라 불리는 그래피티 골목. 2003년 방영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촬영지로, 극중 소지섭과 임수정이 처음 만난 극적인 장소다. 운 좋게도 드라마 촬영하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거일이었고, 흉물스러운 쓰레기통이 중요한 오브제로 쓰였다.
주변 식당들이 일제히 쓰레기통을 문밖으로 내놓았던 것.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누군가 쓰레기통 옆에 의자를 두어 멋진 포토존을 완성했다. 벽면을 빈틈없이 채운 그래피티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면, 누구든 작품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벽을 캔버스 삼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붓 삼아 그림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초기엔 가볍게 끼적인 글자 위주였는데, 점차 어엿한 그림으로 진화해 현재 현대미술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채 50m도 안 되는 짧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거리 예술가들의 위트 넘치는 작품도 볼 수 있다. ‘Fake’라고 적힌 루이비통 명품 지갑을 보는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무릎을 치게 된다. 전 세계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골목에 몇 년 전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아 그래피티를 그리는 신비주의 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쥐 그림이 청소부의 실수로 지워진 것.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21억 원에 거래될 만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리 초입에 타파스를 맛볼 수 있는 스페인 레스토랑 ‘모비다(Movida)’의 입간판이 있어 찾기 쉽다.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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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큰 벽화, 카뉘의 벽 Le Mur des Canuts

프랑스 남동부 론알프주에 있는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 무려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시가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구시가 거리 중 크루아루스(Croix-Rousse)는 과거 견직물 공장 직공과 카뉘들이 살던 곳으로, 지금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큰 벽화인 ‘카뉘의 벽’으로 유명하다. 1987년에 그려진 이 벽화는 실제라고 착각할 만큼 세밀하게 묘사된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착시기법)로, 여러 건물을 겹겹이 지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근감을 살린 하나의 건물이다. 작은 창문 몇 개뿐인 밋밋한 잿빛 건물이 컬러풀하게 변신한 것. 평면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마치 벽화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직기로 옷감에 무늬를 넣어 짜는 직공, 바게트 빵을 옆구리에 끼고 서 있는 노신사, 기뇰 극장 앞에서 솜사탕을 들고 앉아 있는 꼬마 아이 등 지역 주민 30여 명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오른쪽 벽면은 사시사철 담쟁이 덩굴로 덮여 있고, 왼쪽 창문엔 빨래가 바람에 나부끼며 새들이 무리 지어 날아간다. 가운데 길을 따라 계단이 놓여 있여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있다. 1997년에 일부 복원 작업을 거쳐 새 단장한 이곳 건물 아래 통로에는 벽화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ㅎ
  • 에디터 심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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